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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을 높여준 정세영 회장님

정세영 회장님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역사는 물론, 나아가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크나큰 의미를 가진 분이다. 따라서 지금 고인이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겪는 상실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초, 내가 영국 대사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가까스로 공업화의 수준에 오르고 있는 중이었고 따라서 우리가 만든 상품이나 수출품의 수준은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영국 외무성의 국장급 고위 인사가 일부러 나를 찾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강 대사님, 한국에서 근사한 차가 나왔습니다. 마침 제가 집 사람 차를 고르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현대의 포니를 보고 바로 그 차로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어떤 외교관이 그런 얘기를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 고위 인사가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물건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바로 자동차였다. 당시 자동차, 특히 고유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였다는 자부심 때문에 상품을 구매하는 일에 특히 까다로웠다. 특히 가족이 탈 차를 고르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까다로운 자동차 선진국의 고위 인사가 대한민국 현대자동차를 칭찬하며 스스로 그 차를 구매하기로 했다니,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서 나는 무척이나 흥분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자주 뵐 기회는 없었지만 나는 그 이후로 내 마음 속에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이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두었다. 한국 경제 수준이 열악한 가운데 그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시 정세영 사장님의 역할이 그 어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외교 활동보다도 더욱 크게만 느껴졌다.
내가 영국 대사를 지낸 경력은 정세영 회장님과의 보다 의미 있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한영경제위원장(韓英經濟委員長)으로서 양국 경제 교류와 상호 발전에 기여하신 고인께서는 그 같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거금 1만 달러의 대사관 격려금을 쾌척하신 바 있었다. 그 돈이 공동기금의 기반이 되어 한국과 영국 간 양국 교류의 큰 밑거름이 되었으니, 정세영 회장님이 뿌리 내린 교류와 친선과 상호 발전의 정신은 두고두고 우리 모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남다른 자기희생으로 공업입국(工業立國)의 길에

돌이켜 보면 정세영 회장님은 교수나 학자, 혹은 외교관으로 입신(立身)을 하셨다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크나큰 족적을 남겼을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결코 경영자로서의 고인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젊은 시절, 일찍이 정세영 회장님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수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셨다. 그리고 잠시 교수직에 몸을 담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공업입국(工業立國)이라는 범국가적인 과제를 앞에 두고 고인은 산업화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형편이었다. 특히 한국 경제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던 현대그룹의 역할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명감과, 장형(長兄)이신 고(故) 정주영(鄭周永) 회장님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현실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후 자동차산업 발전의 주역으로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성숙 시키는 역할을 성실하게 해낸 정세영 회장님이시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이 가기로 작정했던 길을 버리고, 혹은 자기에게 맞는 적성을 포기하고, 고단한 공업화의 현장을 지켜야 하는 자기희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교수나 학자로서의 고인의 면모가 자동차산업의 특성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은 그 어떤 공업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분야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경영 능력과 치밀한 성품, 남다른 리더십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세영 회장님이 두루 갖춘 것이 바로 그러한 능력과 장점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과 같이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국으로서의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정세영 회장님을 뵙거나 생각할 때마다 훌륭한 인품을 지닌 교수나 출중한 학자를 떠올리곤 했다. 비록 그런 인연으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인이 훌륭한 교수이자 학자였고 뛰어난 외교관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자기희생의 가치와 교훈을 남겼고,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국력을 신장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분신이 되어 세계 속을 달리는 우리의 자동차들

우리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어왔다. 그런 가운데 경제 수준이 향상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와 가치관이 점차 사라지고 소가족 제도와 개인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정세영 회장님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계신 분이었다. 전통 농업사회가 산업화 및 공업화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해야 했던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고인은 전통과 새로운 현실의 가치를 조화롭게 이어온 분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고인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지도자였다. 가족의 전통을 지키며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 정세영 회장의 자기희생이야말로 적게는 오늘날의 현대그룹, 크게는 한국 산업사회를 키운 밑거름이 아닌가.
그런 가운데 고인이 겪었을 개인적인 고민도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은 항상 묵묵히 산업 현장에서 앞장서서 직원을 독려하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자동차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한 기업이 또 다른 가족 단위의 현장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킨 정세영 회장님의 큰 업적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역사 속에서 정세영 회장님은 그렇게 누구도 할 수 없는 큰일을 해냈다.
내가 적십자사 총재로 있을 때 마침 정세영 회장님의 부인께서 부총재를 맡아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하신 인연이 있다. 그 헌신적인 자원 봉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세영 회장님이 이룬 훌륭한 가풍(家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이제 고인은 가고 없지만 대신 우리의 훌륭한 자동차들이 고인의 분신이 되어 세계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정세영 회장님의 업적은 모든 세계인들과 더불어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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