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USEUM 가슴 깊이 되새기며
인생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고인의 모습

정세영 회장님이 이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휴스턴 병원에서 치료를 하시는 동안 병문안을 갔을 때만 해도 회장님이 단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최소한 5년, 10년 이상은 우리와 함께 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 회장님을 뵌 것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산병원에서였다. 그때는 더 이상 5년, 10년 이상을 함께 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고, 나는 가슴이 메어와 뭐라고 말문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차마 아쉬움과 추모의 말을 잇기가 어려운 것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생전 정 회장님과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골프나 헬스 같은 운동을 함께 하는 사이였다. 더욱이 나는 개인적으로 정 회장님과 사돈이라는 귀한 인연을 맺고 있었으니, 그 즐거움과 기쁨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모두 다섯의 사돈 어른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정 회장님은 그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남자 사돈이었다. 그로 인해 함께 헬스를 하고 사우나를 하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었고, 이제 그 즐거움을 잃게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얻은 즐거움은, 단순히 함께 골프를 하고 헬스를 하고 사우나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라운딩을 하고 조깅 머신 위를 달리고 사우나를 하며, 이런 저런 세상사에 관해 얘기를 즐겼다. 그냥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화제들도 많았지만 나는 정 회장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정 회장님은 사돈이라는 사적인 인연을 떠나 나에게는 삶과 사회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그 선배와 스승을 잃은 마음이 한없이 허전하다. 그 마음이야 어찌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정 회장님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기에, 우리 사회와 경제 각 부문에서 느끼는 허전함도 여전히 크기만 하다.

이제는 가고 없어도 항상 내 곁에 있는 정세영 회장님

나는 평생을 외무 공무원으로 살아왔기에 외국으로 출장을 다닐 일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출장을 가는 나라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눈에 보이는 현대 차의 자랑스러운 모습도 점점 늘어만 갔다. 나는 낯선 이국의 도로를 질주하는 현대의 자동차를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고, 주차장에서 현대 차를 보면 잠시 손으로 어루만져 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현대자동차라는 한 기업이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우리의 국력과 우리의 기술이 세계로 세계로 부단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서 나는 그 현장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그 한 대 한 대의 자동차와 그 속의 수많은 부품들 속에 바로 정세영 회장님의 정성과 신념이 묻어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밑거름에도 역시 정 회장님의 철학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 국가의 자동차산업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를 통해 국가 발전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지만, 정 회장님은 평소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학식이 풍부한 여유로우신 분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고 꼼꼼한 가운데, 항상 검소한 생활로 주위의 귀감이 되어 주셨다. 그 같은 모습이야말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이끈 주역으로서의 또 다른 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제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나는 이제 정 회장님과 함께 골프장에 갈 수도 헬스장을 찾을 수도 없다. 그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982년 이래 우리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현모양처의 역할을 다해 주고 있는 며느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며느리를 통해서 가끔 정 회장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고인은 가고 없지만 정세영 회장님은 그렇게 항상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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