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USEUM 가슴 깊이 되새기며
가나안농군학교와 맺은 소중한 인연

가나안농군학교(農軍學校)는 1962년에 설립된 영농후계자 양성기관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소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아름다운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일구어 가는 농군의 역할을 다해 주었다.
정세영 회장님은 바로 그 같은 농군학교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신 분 중의 한 분이었다. 아울러 몸소 그 정신을 실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교훈이 전해지도록 애를 쓴 분이었다.
정 회장님이 가나안농군학교 입소(入所)를 결심하신 것은 외국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현지 공장 건설 문제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타고 있던 정 회장님은 기내에 비치된 <월간조선>을 읽다가 마침 가나안농군학교와 관련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필자의 선친(先親)이기도 한 김용기(金容基)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께서 MBC 논설위원과 가진 인터뷰 기사로서, 농군학교의 설립 정신과 활동, 그리고 목표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기사를 본 정 회장님은 사원들의 의식을 개혁하는 데 최적의 교육이 될 거라고 확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귀국한 즉시 정 회장님을 비롯한 140명의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이 처음으로 가나안농군학교에 입소하여, 이후 길고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갔다.
처음으로 입소한 그 140명의 교육생은 노동조합 간부를 포함한 일반 근로자 70명과 정세영 회장님을 비롯한 경영진 및 임직원 7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일반적인 노사(勞使) 관계가 그랬듯이, 노조 간부들과 회사 경영진과의 관계는 다소 긴장되고 대립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육이 진행될수록 그 모습에 차차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사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던 것처럼 보였던 그 140명의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어느새 노(勞)도 없고 사(使)도 없는, 그저 ‘현대자동차’를 소중히 여기는 하나의 가족들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조합 위원장이 자진해서 정세영 회장님의 방을 청소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가나안농군학교 입소는 현대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사원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10년 동안 무려 2만 6,000여 명에 이르는 현대자동차 사원들이 가나안농군학교 교육을 이수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삶의 가치와 근면, 검소, 절약의 미덕을 소중히 여기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이 현대자동차의 정신과 접목되었다.

농군학교의 설립 정신을 소중히 여기며

그 누구보다 가나안농군학교의 설립 정신에 공감하였던 정세영 회장님은 농군학교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교육에 필요한 모든 승용차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고, 그 같은 지원은 농군학교를 운영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일은 일가상(一家賞) 제정 당시의 후원이었다. 일가상은 1988년에 타계하신 설립자의 1주기를 맞아 설립자의 아호(雅號)를 따서 제정한 상으로서, 농민 부문과 공익 부문, 그리고 산업 부문으로 나누어 각 분야에서 사회적인 모범이 된 개인과 단체를 시상하는 것이었다. 일가상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과정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했는데, 정세영 회장님은 망설임 없이 지원금을 희사해 주었다.
나는 그 상의 제정 취지를 이해하고 널리 고취하도록 도와준 정 회장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 같은 도움을 바탕으로 일가상은 해마다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숨은 주역들을 찾아 그 뜻을 널리 알리고 있으며, 매년 시상식 때마다 보이지 않는 정 회장님의 깊은 철학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가나안농군학교에는 지금도 정 회장님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있다. 기념 강당을 지을 때 지나가는 말로 예산이 없어서 어렵다는 말을 꺼냈는데, 정 회장님은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김 교장님은 교육에만 신경 쓰세요. 어렵다고 남의 돈 끌어 쓰고 하면 큰 일 납니다.”
그리고는 거액의 후원금을 보내 주었다. 아울러 강당에 놓을 피아노 1대와 교육용 미니버스까지 함께 지원해 주었다.
신차 소나타II가 나왔을 때였다. 정세영 회장님은 공장에서 제일 먼저 나온 차를 형님인 정주영(鄭周永) 회장님께 보내고, 그 다음 서너 번째로 출고된 차를 가나안농군학교에 보내 주었다. “이걸 타고 나가면 외제차라고 한다”면서 정 회장님은 새 차에 대한 품질과 성능에 대해 유난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국가적인 자부심을 가나안농군학교가 함께 나누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가나안농군학교는 그렇게 정세영 회장님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갔다. 그 사이에 농군학교를 거쳐 간 많은 이들에게도, 그 인연이 간접적으로 이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소탈하고 서민적인 우리 시대의 농군(農軍)

내가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 정 회장님과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일이 많았다. 김초밥과 같은 소박한 메뉴로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세상사에 관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었고, 그럴 때면 정 회장님도 회사 일은 잠시 잊고 편안한 마음이 되는 듯 했다.
한 번은 40년 이상 농군학교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씨를 뿌리고 결실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비유하여 내 생각을 전했고, 정 회장님은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대단하다”는 과분한 칭찬을 해주었는데, 나는 그 진심을 가슴에 그대로 담아 두었다.
우리는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 이야기, 인력자원 개발의 필요성, 그리고 우리 민족의 비전 등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정 회장님은 특히 농군학교의 현대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서라도 가나안농군학교가 대대로 이어져야한다”고 강조하였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에 나는 농어촌발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대통령을 만난 자리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정세영 회장님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김 대통령은 “서민적이고 소탈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했다.
나 또한 정 회장님이 얼마나 서민적이고 소탈한 지 잘 알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현대자동차 사원들이 입소하여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정 회장님이 회사 일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이미 저녁 식사는 다 끝이 난 상태였다. 아직 저녁 식사를 못한 정 회장님은 배식대로 가더니 배식통 안에 조금 남아있던 카레라이스에다 식은 밥을 비벼서 드시기 시작했다. 나나 다른 임원들이 미안하고 당혹한 얼굴로 바라보자, 정 회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늦게 온 내가 잘못이지 뭘 그래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정세영 회장님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만 애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경제를 일으키고 지키는 일도 애국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분은 투명한 경영을 이어간 진정한 모범 기업가였다. 소박하고 소탈한 인간적인 성품이 있었기에, 그 같은 기업정신이 더욱 빛이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세영 회장님이 비행기 안에서 농군학교의 취지에 공감하고 첫 입소를 하였을 때만 해도 우리는 작은 인연이었다. 그러나 그 분의 헌신적인 도움과 적극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그 인연은 마침내 농군학교 정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65만 여 명의 농군을 배출한 가나안농군학교는 이제 그 설립 취지를 세계적인 교육 운동으로 확장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 중요한 과제 앞에서 다시 한 번 정세영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되새겨 본다. 그 분의 기업가 정신이 우리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정세영 회장님 ─ 그 분은 이 시대의 진정한 농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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