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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시골 소년에서 한국 경제 발전의 일등공신으로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직도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우리들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바삐 저 세상으로 가야 했는지 마냥 슬프기만 하다.
강원도 시골 소년이,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고인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가진 빼어난 경영자였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의 창립 때부터 사장을 맡아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발전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정열을 바쳤다. 또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기술력 확보 및 부품국산화, 생산능력 확충 등을 통하여, 질적(質的) 양적(量的)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성장시켰다.
그 같은 업적을 남긴 정세영 회장의 서거 1주기를 맞이하여, 무릇 고인과의 지나간 추억과 인연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정 회장과는 보성중학교에서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당시는 해방 전후의 시기여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고 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고인은 그 자신 특유의 서민적인 이미지대로, 친구들과의 신의를 중요시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 아울러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매사를 마다하지 않는 부지런함으로 늘 활기차게 움직이는 친구였다.
우리는 중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서로 떨어져 생활을 하였지만 꾸준하게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자주 모임을 갖고 만났는데, 그 당시 정 회장이 입버릇처럼 늘 하던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항상 이런 진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곤 했다.
“기업이 성장해서 국가 경제가 발전해야만 가난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나라 경제를 살리는 데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늘 나에게 그 같은 과제를 함께 수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해외 출장을 갈 때 비행기에서나 해외에서 너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너 같이 일을 합리적으로 잘 처리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왜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우리 함께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정 회장의 그런 말들은 항상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아울러 나는 자신보다는 기업을, 기업보다는 나라를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의 경제사(經濟史)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

내가 기억하는 정 회장은 항상 소탈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약자를 배려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심성의 소유자였다.
특히 정 회장은 어떤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사심(私心) 없이 원칙을 지켰다. 그런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나는 정 회장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모습은 어려서 보았던 친구일 때부터 거대 기업의 회장으로 재임할 때까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사업을 하게 된 동기 또한 정 회장의 권유에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나는 사업을 해 볼 생각은 있었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선뜻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 회장이 나에게 “이제 사업을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고, 나는 사업자금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을 했다. 아울러 사업자금을 마련하려면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5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어떻게 회사 생활 20년 가까이 하고 경리부장까지 한 사람이 그만한 사업자금이 없느냐”며 매우 안타까워했고, “내가 힘이 되어줄 테니 사업을 시작해 보라”며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나는 지금과 같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 회장이 나에게 선뜻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보잘 것 없는 내 능력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부터 같이 동기동창으로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는 사업을 도와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뢰에 대한 판단이 서면 성심껏 도와주는 성격이 정 회장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내 사업은 이렇게 정 회장의 큰 은덕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 회장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고 자부한다. 나는 그것만이 정 회장이 나에 대해 베풀어 준 배려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정 회장 또한 내 뜻을 이해하고, 사업운영에 대한 격려와 경험담을 들려주며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특히 “사업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한다”는 엄격한 원칙을 강조하며, 정 회장 자신이 그 원칙을 결코 어기는 적이 없었다.
정 회장이 타계하기 10개월 전 즈음에 만났을 때 여러 가지 옛날 얘기가 오갔는데, 정 회장은 “자동차산업에 종사한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라고 회고하였다. 특히 마지막 가는 길을 예감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아닌가? 만일 또 다시 폐암이 재발할 경우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지지 않겠어.”
그 말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정 회장이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 교분을 쌓아온 친구나 지인들에게 정 회장을 찾아 볼 것을 권유하였다.
결국 정 회장은 타계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가야만 하는 그 곳으로…….
당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사람과 이별을 하였다. 그리고 그 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무슨 일이든지 세월이 지나면 역사의 망각 속으로 묻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한국의 중추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 회장의 열정과 집념, 그리고 거룩한 헌신을 바탕으로 이룩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은 한국의 경제사(經濟史)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가 될 것이다.
정 회장이 자동차산업에 몸 바쳐 온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듯이, 나 자신도 자동차산업과 유관(有關)한 기업을 이끌어 오면서 그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 아울러 정 회장의 숭고한 헌신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그의 발자취를 쫓듯이 오늘도 쉼 없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정녕 고인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튼튼한 주춧돌이었다. 고인의 영전에 삼가 경의를 표하며, 편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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