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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면서 스승이었던 소중한 인연

고인(故人)이 된지 어느덧 1년, 하지만 정세영 회장은 나에게는 영원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경영자로 살아있다. 살아생전 그가 이룬 업적이 너무나 크고 인간적인 정이 심다(甚多)했던 까닭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정 회장의 흔적을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우리는 자동차산업과 제약산업이라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오랜 경영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야가 상이(相異)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국내외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을 경영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늘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에게 진정한 조언을 하는 소중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나는 정 회장의 앞선 판단 능력과 정도경영(正道經營)의 자세에서 늘 소중한 배움을 얻곤 했다.
내가 유한양행(柳韓洋行)의 사장으로 취임할 무렵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함께 골프를 치는데 정 회장이 난데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 제약은 지금 수출과 수입의 비중이 어떻게 돼?”
나는 그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제약산업의 특성상 우리는 아직 세계 수준에 이르기는 요원한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원재료(原材料)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내 설명을 듣고 정 회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말이야, 지금 국산화율이 85%야!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곧 나머지 15%도 국산화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나는 정 회장의 말을 듣고 여러 가지 느낀 바가 많았다. 정 회장의 성격상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울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설명은 바로 그가 원하던 일이 애당초 무엇이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요컨대, 정세영 회장은 자동차산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벌써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경영자였다.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자동차산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겪었을 고뇌와 시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선진 각국의 자동차를 보면서, 정 회장은 언젠가 완전한 부품국산화와 기술자립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남몰래 몇 번이고 이빨을 깨물었을 것이다.
그날 골프장에서 정 회장이 내게 한 자랑은 그 개인의 공치사가 아니었다. 정 회장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미래가 조금씩 열리고 있는 일에 가슴이 벅차 있었고, 그 미래가 곧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의 미래와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음 날 회사에 들어와 임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제 수입에만 의존하지 말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노력하는 길을 생각해 보자고. 비록 자동차산업과 그 업종의 특성이 다르기는 했지만, 정 회장이 보여준 노력과 자부심은 대한민국의 한 경영자인 나에게도 분명한 비전이자 모범이었다.

오직 정도(正道)를 걸으며, 세계 속의 자동차 회사를 키운 철학과 저력

정 회장은 성격이 급하다. 그러나 유난히 정(情)이 많고 섬세한 친구였다.
기아자동차 사태로 국내가 어수선했던 1996년, 나는 숭실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영예가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해서 정 회장을 비롯한 친구나 지인(知人)들에게는 가급적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마침내 수여식 날, 막 식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저편 입구에서 정세영 회장이 들어오고 있지를 않은가! 단상의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는 입장이었는데, 마침 경영대학 교수 한 분이 정 회장을 알아보고 단상 위로 모셨다. 그렇게 해서, 학교에서 미리 준비 하지 못했던 의자 하나가 장관 옆자리에 급히 마련되었다.
당시 정 회장은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데다 기아자동차 문제 등으로 정신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참석을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야 더 할 나위 없었다. 식이 끝난 후 내가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었더니 정 회장은 짐짓 무뚝뚝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문도 안 보고 사는 줄 알아?”
그렇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깊은 마음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러나 회사나 자기 업무로 돌아가면 오직 정도(正道)를 걷는 엄격한 경영자였으며,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 진정한 기업인이었다.
친구 사이건 어떤 사이건, 정 회장에게는 청탁이란 게 있을 수가 없었다. 정 회장은 평소에 아예 이렇게 못을 박아 두었다.
“나는 형님이 그룹 회장이고 아니고 상관없다. 나는 한 사람의 전문경영인일 뿐이다.”
그런 각오로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그 사이에 병을 키운 건지도 모르겠다.
2004년 1월에 우리는 모처럼 부부 동반으로 하와이 여행을 갔다. 15일 예정의 여유로운 일정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 동안 정 회장이 좀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웬걸, 불과 사흘이 지나자 정 회장의 입에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내가 “너도 건강 좀 챙기고 살아라!”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정 회장의 대답은 역시 그다웠다.
“나한테 노는 법 좀 가르쳐 줘라!”
그렇게 일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다 보니 우리가 묵은 호텔 안에서도 정 회장은 오직 “저런 호텔을 지어야지”하는 얘기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간신히 일주일의 일정만을 채우고 돌아오고 말았다. 이미 몸이 성한 사람이 아닌데도 정 회장은 그가 일했던 일터, 그가 죽는 날까지 일할 일터로 돌아온 것이 무척 편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로 그런 자세가 현대자동차를 세계 속의 회사로 성장시킨 저력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제약회사 경영인으로 46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 정도를 걷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지를 일깨워 주는 모습이었다.
정 회장이 자서전을 냈을 때 내가 친구 자격으로 건배사를 한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자동차산업의 개척자이자 인생의 정도를 걸어온 정세영 회장을 위해 진심어린 건배 제의를 했다. 나는 그가 평생 정도를 걸어 왔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죽는 날까지 정도를 걸어가리라 확신했다.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킨 정세영 회장은 내 인생의 친구이자 존경하는 경영자다. 그리고 지금 저 세상 사람이 되어서도 한국 경제를 걱정할 진정한 일꾼이다. 자서전 발간 때 건배사를 했듯이, 지금 내 친구 정세영 회장을 위해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건배사를 올리고 싶다.
“비록 일찍 갔지만 세상을 멋지게 살다간 내 진정한 친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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